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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화암리를 아시나요?

등록일 2003-02-28 00:00
  • 글쓴이 윤상준
  • 이메일 비공개
저는 실향민 2세이구요.
아버님(윤**)은 이미 15년전에 타계하셨습니다.
또 다시 아쉬운 추석을 보내면서,생전의 아버님이
그리도 그리워 하셨던 고향을 떠올립니다.
지척의 고향을 두고,끝내 타향에서 눈을 감으셨던
아버님을 생각하면,매년의 귀성행렬에 남모를 원망도
있긴 합니다.
분단세대에게도 지금의 귀성행렬처럼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면,
10일,아니 1년이 걸려도 갈겁니다.
걸어가든,기어가든 깨지든 엎어지든 말입니다.
그? 귀성시간 29시간이 대수겠습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고향의 흙을 밟아보고픈 간절한 열망은
이리도 간절한데...

<저희 아버님은 이북에서 6.25전에 결혼을 하셨드랬지

<처가가 당시의 송화군수(최군수)였다구 하는데,
그 따님(아버님의 처이자,제 큰엄마(?)이겠죠)은
신천군내의 백화점 점원이었다구 하구여.
<처가가 노동당내의 핵심세력이었다나,뭐라나...
모두다 부질없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양들이었지요?
<... 견딜 수 없는 갈등이 있었겠지요?
<하여 슬하에 2딸을 둔 채 단신 월남하게 됐죠.
<큰 딸은 1940년생(?)으로 ,지금 인천에 계신 제
당숙어른(윤**)과 동갑으로 자랄 때 무척이나
많이 싸웠던 모양입니다.
<작은 딸은 3살 때 아마도 `편도선염`으로 생을 달리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병이지만...
<아뭏든 단신 월남하신 아버님은 얼마간 가지고 온
돈(꽤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슴)으로 같이 내려오신
친구분들과 사업도 하고...그러면서 부산까지
오셔서 저희 어머님과 결혼을 하시게 됩니다.
<분단세대면 누구나 겪는 참으로 진부한(?) 이야기
이지만 분단세대가 아니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가슴아프고 억울한 사연이지요.
<분단1세대에서 2세대,3세대로 가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갈수록 희석되어지고 끝내는 잊혀지고야
말 그 곳!!
<아! 어서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가 보고 싶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미친듯이 소리도 쳐 보고 말입니다.
<아버님 살아 생전에 고향에 대한 사소한 단초라도
더욱 케어 묻지 못한 것이 이리도 가슴이 저밉니다.
<이렇게 밖에 아버님을 회상할 수 없다는 것이 불효
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아버님! 편히 잠들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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