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납북자란?

납북자! 돌아올 그날을 기원합니다.

납북유형

어선 납북

납북자 중 어선을 통한 납북자가 3,729명으로 전체의 89%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3,263명은 북한이 송환하였고, 9명은 직접 북한을 탈출하여 귀환하였다.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납북어부는 457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어선을 타고 조업을 하다가 기관고장이나 실수로 인하여 NLL을 월선하거나 공해상에서 조업중 북측 경비정에 의해 나포된 경우이다. 북측은 북방한계선을 월선하였다는 이유로 이들이 자진월북했다거나 간첩행위자라고 주장하면서 송환을 지연하거나 아예 송환하지 않았다.

민간 항공기 납북

1969년 12월 11일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우고 강릉을 출발하여 김포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 민간 여객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 간첩에 의해 납북되었다. 북한은 국제적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을 송환하였으나, 나머지 11명은 아직까지 북한에 억류하고 있다.

군인ㆍ경찰 납북

1970년 6월 5일 서해 연평도 공해 상에서 「해군 정찰함 Ⅰ-2정」이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을 받아 침몰하였으며, 승조원 20명 전원이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 그리고 1974년 6월 28일 동해 어로보호구역을 경비하던 「해경 863함」이 북한 경비정의 공격으로 침몰되었고, 승조원 2명이 북측에 억류되어 있는 것이 북측의 비디오테이프공개로 확인되었으나 북측은 송환을 거부하였다. 이밖에도 북한은 순찰·경계 등 임무를 수행 중이던 우리 육군 장병 8명도 납북하여 현재까지도 북한에 억류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민간인 납북

국내로 침투한 간첩에 의해서도 우리국민들이 납치되었다. 1977년 8월 홍도 해수욕장에서, 1978년 8월 군산 선유도해수욕장 등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해 우리 고교생 5명이 납북되었다. 이 가운데 1978년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납북되었던 김OO은 일본인 납북자인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밝혀져 국내외에 충격을 준 바 있다. 김OO은 2006년 6월 29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누나를 상봉하기도 하였다. 1975년 8월 26일에는 비무장지대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 풀을 베어 운반하던 김○○이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기도 하였다.

해외에서의 민간인 납북

북한은 해외에서도 우리국민을 납치해 갔다. 1978년 4월 13일 수도여고 교사였던 고○○가 노르웨이 오슬로 여행 중 납북되었고, 1987년 7월 20일 MIT공대 유학생이었던 이○○도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 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었으며, 이어서 오○○이 가족과 함께 북한에 입국했다가 억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