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이야기

가족 이야기

박재풍, 김상운님의 이야기

“ 살아생전에 다시 볼 수 없다면, 잘 살고 있다는 서신만이라도 받았으면.. ”
박재풍, 김상운님의 사연

북측 통보 100인 명단 신문기사 (2001년 2월 10일자 경향신문)

박재풍님의 사진 박재풍님은 6.25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를 지니며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폭격에 돌아가셨고, 큰 형님의 생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동생 박재영님은 의용군으로 소집되어 북으로 갔습니다. 박재풍님의 기억 속에 박재영님은 고장 난 시계를 새 것처럼 고쳐낼 정도로 손재주가 많고, 누구보다 심성이 고운 동생이었기에, 죽었다는 풍문에도 꼭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조카 김상운님의 사진 그런 박재영님을 기억하는 또 한사람이 있습니다. 큰 누님의 아들이었던 조카 김상운님은 어린 시절 함께 놀며 친하게 지냈던 막내 삼촌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삼촌의 소식이 들려온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북측에서 남측의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신문 보도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막내 삼촌의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2001년 남북 서신교환 당시 이산가족 박재풍의 북측 이산가족 박재영이 여동생 박시향에게 보낸 편지봉투 2001년 남북 서신교환 당시 이산가족 박재풍의 북측 이산가족 박재영이 여동생 박시향에게 보낸 편지 1 2001년 남북 서신교환 당시 이산가족 박재풍의 북측 이산가족 박재영이 여동생 박시향에게 보낸 편지 2

2001년 남북 서신교환 당시 이산가족 박재풍의 북측 이산가족 박재영이 여동생 박시향에게 보낸 편지

60년의 긴 시간이 지나서야 그토록 그리워하던 동생을 만났습니다. 60년의 긴 세월이 흘러서야 추억 속에 잊지 못할 삼촌을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냈어도 어쩔 수 없는 가족이기에 복받쳐 오는 눈물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형도 동생도 그리고 조카도 세월의 무게가 너무나 버거운 고령의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생전에 다시 볼 수 없다면, 그저 소식만이라도 전해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풍님과 김상운님은 북에 있는 박재영님의 서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