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권병태 님이 북측에 사는 이산가족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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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권병태 님이
북측에 사는 큰형 권병성 님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형님 살아계신 지 어떻게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형님을 항상 그리워하며
형님 살아만 계시면 제가 이북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가서 한번 뵙고 싶어요
제 이름은 권병태입니다 나이는 현재 80이고요
고향은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천천리 173번지입니다
원래 태어나기는 수원인데, 형님이 나갈 적에는 화성에 있었거든요
아버지 이름은 권윤봉입니다
나이는 자세히 모르겠고 지금은 아마 120 정도 될까?
어머니 이름은 홍옥희 나이는 115 정도 됐을 거예요
첫째 지금 어떻게 되셨는지 모르겠지만
큰형 이름은 권병성, 그다음에 누님은 권병례
그 아래 권병원, 그다음에 저 권병태
권병환 그렇습니다
찾는 사람은 권병성입니다 지금 95쯤 됐을 거예요
제가 셋째 동생쯤 돼요
저는 어렸을 때 잘 모르지만, 형님이 어렸을 적에
수원에 삼화 인쇄소에 직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거는 형님이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에 살 적에 동네에 6·25가 나서
북한의 남로당에 있는 사람이 매송면 천천리에 청년들을
일곱 명 데려가는 중의 한 명이었었죠 권병성이란 사람이
그때 당시에는 권 씨가 3명이 나가고 확실히 모르지만
그 또래 친구들 7명이 나가서 현재는 행방불명
본인이나 부모님한테 말한 건 없고
다만 이제 전쟁이 난 후로 1950년 6·25 났는데,
형님이 나간 거는 7월 초쯤 동네에서 나가서 친구가 봤는데
외관에서도 본 적 있고 수원 매산국민학교에서는
아버지하고 같이 얘기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는 확실히 몰라도, 바로 아래 동생 되는 병례
병례는 수원 세류국민학교를 다녔고
나간 본인, 권병성, 큰 형님은 삼화 인쇄소를 다니다 나갔다
서울의 모 신문사도 다니고 그랬었다 그런 말만 들었어요
그런 걸 몰랐었는데 6·25 때 행방불명되고
고향집에서 뭘 정리하다 보니까
형님이 인쇄소에 다녔을 적에 급여,
신문사 다녔을 적에 사진 뭐 이런 걸 내가 봤는데
근데 사진이 다 없어졌어요 5장 정도 있었는데
인쇄소 사장이랑 직원들이랑 같이 찍은 게 있었고
또 수원 서호방죽에서, 서호방죽이라면 대표적인 수원 역전있는데
거기 소나무 밑에서 사진 찍은 게 한 3장을 봤어요
근데 그 사진이 없어졌어
아 그거는 말문이 막히네
형님이 나가고 나서는 행방불명 되가지고
어머니가 밥을 때 되면 항상 퍼놓고 그런 적이 있었죠
어머님은 형이 나가고 나서 그렇게 말이 없었어요
마음속으로는 자식이 언제 오나 하지만
그때는 부모들이 다 그렇잖아요
어디 가서 자고 그러면 밥 퍼놓고 기다리고
집사람하고 남매를 뒀는데, 딸은 출가하고 아들하고는 같이 살아요
형님 살아계신 지 어떻게 되신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형님을 항상 그리워하며
여러 군데 백 방위로 찾을 길도 없었는데
통일부에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서 궁금한 사항을 다 얘기했어요
형님 살아만 계시면 제가 이북이라도 갈 수 있으면 가서 뵙고 싶어요
가족은 지금 바로 형님의 동생인 병례, 병원은 2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 있고 막내 병환이가 있어요
만약에 형님의 가족이 계시다면 한번 좀 뵙고 싶고
이북에 계신다면 남북 왕래가 된다면 뵙고 싶고 정말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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