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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편지

권성주님의 영상편지

등록일2026-03-20 14:01:04

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권성주 님이 북측에 사는 이산가족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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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주

형님 제발 살아 계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님 제발 살아 계셔 주세요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가 부둥켜 안고 만날 수 있는
그 해가 오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빌고 빌고 기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본인 성명은 권성주입니다
현재 나이가 84시입니다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시 운욱리 39 122-7번지입니다

제가 찾고자 하는 사람은 우리 형님, 권형주입니다
아마 살아계시게 되면 94살 정도가 되겠죠
헤어진 시기는 1950년 12월 23일 되겠습니다
함흥은 이씨 조선의 이태조께서 자라고 수학하고
청운의 꿈을 키운 고장이어서 제가 치마대 인민학교를 나왔는데
이 치마대라고 하는 것은 태조 이성계가 훈련하던
그 산을 치마대라고 합니다
저희 함흥은 인구가 약 20만명 정도가 되는데
굉장히 산세도 좋고, 또 바다도 좋고, 강도 좋고 해서
모든 것이 풍부한 고장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기억은 저희 형님이
제가 한 네다섯 살 정도가 됐을 때
형님이 집에서 일어나게 되면
저를 끌고 함흥에 반룡산 쪽으로 올라가서
성대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직까지 목소리가 이렇게 좋은 이유도
형님 덕분이 아니냐 (생각합니다)
올라가기 싫다고 하게 되면 산에 올라가서 내려올 때
꼭 사이다를(사주며) 저를 얼러주곤 하셨습니다
형제가 많습니다만 제가 막내여서
큰 형주 형님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던 그런 기억이 있어서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 만큼 형제를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모든 세상의 동물들은 수구 초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죽을 때는 자기 고향 쪽에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하는데
제가 그런 애잔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요 사이는 나이 한 살 더 먹은 입장에서
고향 생각, 형님 생각이 더욱더 납니다
어서 하루빨리 평화 회담이 제대로 되어서 평화통일이 이뤄져서
저희들도 고향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이 바로 그때 관절염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고 또 국군과 유엔군들이 3일의 약속입니다
3일 후에는 돌아온다 하는 그런 내용에 의해서
‘형님 그냥 집에 계십시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저희들은 그 길로 형님은 놔두고
함흥에서 마지막 열차를 타고
흥남에 가서 마지막 배를 타고선 거제도에 왔다가, 부산에 왔다가
그 다음에 제가 성장한 서울까지 와서 한 38년 동안 있다가...

미국 이민은 1988년도 2월 20일에 왔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여기와서 기독교에서 아브라함 후손은 깨알같이 번성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의 손자가 벌써 여섯이고,
손녀가 하나 되는 뭐 적잖은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게 고향이라고 하는 거는 선대 대대로 삼대가
그 고장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거니와
또 형님이 그동안에 결혼해서 가족이 혹시 있다고 하게 되면은
가족이라 하는 친지가 아닌 가족이라 하는 혈연이고
저희 혈육이기 때문에
제가 살아 계시다고 하게 되면
제 역량이 있는 한 도와주도록 하겠습니다
형님이 워낙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함흥 도민 회관에서도 독창회를 하시고
그것이 저한테도 영향이 많이 되어서
저도 음악에 대한 직접 연주는 못하지만
여러 클래식에 대한 바하서부터 헨델에서부터 모차르트, 베토벤과
형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차이코프스키나 멘델스존
아니면 라프마니노프에 대한 (식견이) 다른 사람과 비견되는
음악에 대한 그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님 같이 그렇게 만다린이나, 피아노 연주를 못하지만
음악에 대한 식견을 저한테 물려 준 거 아니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음악을 클래식, 세미클래식 들을 때마다
형님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형님 제발 살아 계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님 제발 살아 계셔 주세요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가 부둥켜 안고 만날 수 있는
그 해가 (오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빌고 빌고 기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