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김영태 님이 북측에 사는 이산가족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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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김영태 님이
북측에 사는 이복형제 김등연 님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등연 형님, 또 상연 형님, 또 영희 누님
저는 아버님이 이제 이북에서 넘어오셔가지고 재혼하셔서 낳은
큰아들 영태입니다
아버님께서 두 형님과 누님을 늘 그리워하셨는데
결국은 이제 보지 못하고 돌아가셔가지고
상당히 저도 이제 마음이 많이 안타깝고 그랬었습니다
지금 연세가 살아계신다면 90이 넘으셨을 것 같은데
살아계시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살아계시게 되면은
혹시 그 자손이라도 조카들이라도 있다 그러면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름은 김영태고요 나이는 만으로 69세이고
저희 아버님 고향은 함경남도 여흥군 덕흥면 풍섭리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르고요 형제분도 거기 없으시고 외동이시고
그러니까는 형하고 누나가 있겠죠 배다른 이복누나가 있겠죠
큰형님이 이제 김등연, 그 아래 형님이 김상연, 그 아래 누님이 김영희
찾는 분은 저희 아버님 자녀분들
그러니까 저한테 형님 되시고 누나 되시는 분입니다
김등연, 김상연, 김영희
6·25 전에 이북에서 이제 지주시다 보니까
하루는 당에서 잡으러 온다 그래가지고
잠시 피해서 이제 내려오셨는데, 그게 이제 영영 헤어지신 거죠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 하셔가지고
아마 안 계셨던 것 같은데
그때 넘어오셨을 때 사십 다 되셨을 때니까,
그때 안 계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부모님에 대한 얘기는 거의 안 하셨어요
땅이 있으시니까 농사를 직접 지으시지는 않으셨던 것 같고
그런 얘기는 안 하셨어요
왜냐하면 아버님이 오셔가지고 재혼을 하셨잖아요 저희 어머니랑
재혼을 하시다 보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는 잘 말씀을
잘 안 하셨는데, 큰 형, 그러니까 제일 형이 평양사범학교를 다녔다고 했어요
제일 큰아들이 평양사범학교를 다니고
장사하셨죠 물건 받아갖고 강원도 그쪽, 경상도 그쪽 다니시면서
장사를 하셨었죠
배 타고 내려오셔가지고 거주지가 없고 그러시니까
떠돌이 생활 하시다가 포항에서 정착하셔가지고
이산가족찾기 할 때 했었죠
아버님이 그거 하라 그래가지고 우리는 했죠
근데 그때 아무도 없었어요
아들 둘이요, 저랑
등연 형님, 상연 형님, 또 영희 누님
저는 아버님이 이제 이북에서 넘어오셔가지고 재혼하셔서 낳은
큰아들 영태입니다
아버님께서 두 형님과 누님을 늘 그리워하셨는데
결국은 이제 보지 못하고 돌아가셔가지고
상당히 저도 이제 마음이 많이 안타깝고 그랬었습니다
지금 연세가 살아계신다면 90이 넘으셨을 것 같은데
살아계시는진 모르겠는데, 혹시 살아계시게 되면은 또 혹시 그 자손이라도
조카들이라도 있다 그러면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혹시 만날 날이 있으면 그때 뵙기로 하고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저는 여기서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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