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연안온천이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 정확한 동네이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누이3, 남동생1, 여동생1, 그리고 나 이렇게 모두 9명이 가족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단란하게 살았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무척 추운 겨울 가족과 헤어져 아버지와 단 둘이 피난길에 올라습니다.
아마도 1. 4 후퇴시인 것으로 생각됨니다.
당시 내 나이 7세였습니다.
어느덧 6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 이제 내나이 67세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한만은 세상을 하직하신지 이미 20년이 넘었습니다.
피난민으로 아버지와 서울에 정착하여 고난의 세월도 있었지만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시체말로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하지만 고향의 어머니와 형제들만 생각하면 그만 눈물이 흘러 밥을 먹고 있다가도 숫가락을 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한 것이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뜬 굼 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하자고 북이 제의를 하였습니다.
이산가족이 누구말 마따나 앵벌이 입니까 ?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하면 볼모삼아 이산가족 상봉을 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동기야 어찌되었던 진장으로 남북의 이산가족이 생사라도 알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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