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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일요신문> 신상미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요신문> 사회부의 신상미 기자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일제시대 강제징용과 관련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동남아 방면에서 연합군 포로를 감시한 조선인 포로감시원 문제를 추적하고 있는데요,
그와 관련해 동남아시아에서 돌아오시지 못하고 해방 직후 그곳에서 돌아가신 강제징용자 네 분 유골의 유족을 찾고 있습니다.
이 네 분은 일제시대에 북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현재는 북한 국적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유골은 현재 도쿄 교외의 유텐지(유천사)에 안치돼 있고, 일본 정부(후생성)는 북한의 유족이나 북한정부가 요청해야만 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북한 출신자라 하더라도 남한에 그 유족이 확인된다면 남한의 유족에게 돌려준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그간 북한 군민회 등 여러 방면으로 유족을 수소문해 보았으나, 벌써 70여 년 전 일인지라 추적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곳 사이트는 통일부에서 직접 관리, 운영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 출신 이산가족에 관한 가장 방대한 DB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이 분들의 유족을 찾는데, 그 데이터를 좀 활용할 수 없을까요?

강제동원 피해자 4분의 이름 및 일제시대 주소, 사망장소 등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문상 육군군속(포로감시원) 경기도 개성부 고려정 267 번지 47년 2월 25일 싱가포르에서 사망, 사망 당시 26세(1921년 생)

장수업 육군군속(포로감시원) 평남 진남포부 비석정 75번지 46년 11월 22일 싱가포르에서 사망, 사망 당시 31세 (1916년 생)

박준식 육군군속(포로감시원) 경기도 개성부 지정 44-12번지 47년 9월 5일 자카르타에서 사망, 사망 당시 31세 (1916년 생)

최창선 육군군속(포로감시원) 함북 명천군 서면 용산 265번지 47년 9월 5일 자카르타에서 사망, 사망 당시 32세 (1915년 생)

지난 몇 달 간 알아본 바에 의하면, 고 조문상 씨의 경우엔 남한에 유족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인천에 산다는 여동생과 '조준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80대의 남동생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 하네요.

최창선 씨의 경우엔 명천군민회를 통해 유족을 수소문 해주십사 부탁드렸는데, 박성환 군민회장님께서 남한에 유족이 없는 것 같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이산가족 정보통합시스템'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모두 지난 1942년, 젊은 나이에 포로감시원으로 동남아시아 방면으로 징용을 가셨고,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시지 못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위 네 분의 유골이 현재 일본 도쿄 메구로구 유텐지 지하에서 70년 넘게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도 현재 추진되고 있는데, 혹시 이 문제도 같이 북한 쪽에 문의해 북한의 가족이 유골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남한에 유족이 있는지 여부만이라도 통일부에서
확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6.25 전의 북한 거주지 주소가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시다시피, 북한과 일본은 정식 수교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일제시대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봉환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한에서 유족을 찾지 못한
북한 출신자들의 유골이 이국의 절에서 오랫동안 방치돼 있는 실정입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 실무로 많이 바쁘시겠지만 관심 좀 가져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통일부에서 관심가져 주시면 1942년 부산을 떠난 후로
71년 만에 위 네 분께서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관심 가져 주시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 메일은 shin@ilyo.co.kr 이구요,연락처는 010 4455 3072 입니다.
이 글 보시고, 데이터를 통해 남한의 가족만이라도 추적이 가능하다면,
꼭 연락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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