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생으로 최근에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와 같이 협력하여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을 맡고 있는 회사에서 콜담당으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통일부에서 내려온 이산가족명단을 보고 그분들께 전화를 걸어 영상편지 제작에 참여하실건지 설득하고 제작 건을 따내는 일이었습니다.
몇천개의 번호를 돌려가며 전화하다 보면 대략 1/20정도 영상편지를 수락하셨습니다.
회사에서 알려준 대로 대강 취지와 제작절차를 간단히 말씀드리고 의향을 여쭤보면 간혹 감사함을 표시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무관심 하신분들이 반틈, 언짢은 내색을 표하시는 분들이 반틈이셨습니다.
여기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이산가족들을 위해 나온 영상편지라는 좋은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중 왜 그 수요자 분들께서는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는 것일까요?
첫째는, 명단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면 이미 돌아가셨다한 분들도 많고, 등록된 전화번호 중 반틈이 오번,결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산가족 당사자와 신청자가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 자녀나 손자분이 명단에 올라가있는게 많았습니다. 정작 이산가족분들은 돌아가시거나 요양원에 계셨고 자녀나 손주분들은 돌아가신 적이 언젠데 이제와 그러냐며 불쾌한 기색을 표하셨습니다. 또 중복된 명단도 아주 많아서 몇차례나 다시 전화받으셨던 분이 많습니다.
시스템 자체가 부실한 것을 직접 체감하신 이산가족 분들이 많은데 얼마나 많은 실망감을 느낄까요.
명단 관리 제대로 해주세요.
둘째는, 그저 건수를 따내기 위한 보여주기식 프로그램 같습니다.
통일부 측 홍보만으로는 이 사업을 놓치시는 분들이 있으니 직접 연락드리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묘하게 회사 내에서는 목표량을 제작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회사 대표님 말씀으로는 몇만편을 제작하라고 적십자사에서 지령이 내려왔다더군요.
심지어 저희는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썼습니다. 보통 북에 있는 가족분들을 찾는 남측 이산가족분들이 자신의 내외자분이나, 자녀, 형재,자매하고 같이 영상을 촬영하거나 형재.자매의 경우 한분이 대표해서 찍었습니다. 하지만 건수를 늘리기 위해 이산가족 당사자분, 그분의 아내, 그분의 자녀분, 그분의 형제. 이렇게 각각 따로따로 촬영하였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누님을 찾아요." "저희 할아버지의 삼촌을 찾습니다." 이런식으로요. 북에 있는 같은 분을 찾는 건이 세네건으로 늘어나는거죠.
저희는 "따로따로 찍으셔야 북측 적십자사에서 가족분을 찾기 쉬워져요.~"라는 뻔뻔한 말까지 해가면서 건수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영상편지 사업이 목표량을 채워야하는 성과 사업인가요? 언제부터 이산가족을 위한 사업이 단지 신문 기사에 숫자로 보여주기 위한 사업이었나요? 이익집단 같아요. 이산가족이 소비자인가요...?
셋째, 협력업체들의 엄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산가족들 말씀을 들어보면 오기로 해놓고 안온 경우도 많고, 피디들이 취소 후 다시 재연락이 안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명단자체에 문제도 있었지만 회사 내에서 관리도 아주 부족했습니다. 체계적으로 명단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종이는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수락/거절 표시 체계도 엉망이었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전화를 돌리기 위해 저같은 알바들을 썼는데 이 알바들에게 통일된 업무양식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콜 시스템 자체가 엄청 난잡했죠.그래서 거절한 분에게 또 다시 거는 사건이 아주 많았습니다. 불같이 화내시는 분들도 많았죠.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아웃바운드가 아니라 통일과 이산가족이 연결되어있는 민감한 문제이니만큼 협력업체 선정과 업체관리에도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상품판매처럼 이 일을 하지 않도록 협력업체에게 꼭 당부해주세요.
넷째. '영상편지'프로그램 참여자들을 적십자사 측에서 지속적 관리해야합니다.
제작을 맡은 협력업체들이 많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기촬영자명단 문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촬영예약자 등에 대해서도 통일된 관리 체계가 없는 듯 싶습니다.
또 찍고나서는 참여자들께 문자서비스로 언제 영상제작 완료가 되는지,제작된 영상을 촬영자에게 언제 보내드릴 것인지 등의 확실한 관리 부탁드립니다.
다섯째, 통일에 대한 인식 재고와 홍보.
제가 전화를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내 나이가 이제 죽을 나인데, 언제 통일이 된다고 이런걸 찍겠누~." , "아마 북쪽가족들도 죽었을거야. 희망이 없어." 라는 말입니다.
저 또한 그런 말을 들으며 많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제 3자 입장에서 봐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북쪽 적십자사에 영상편지를 전달해주겠다는 말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의미없게 느껴졌습니다.
현재 대북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통일부에 걸맞은 역할을 해주세요. 통일에 대한 희망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 주세요.
단지 허울뿐인 통일부가 아닌 현실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업을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산가족 영상편지가 주요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허무맹랑하거든요. 저도 한번 좋은 사업 아이디어 생각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노력해주세요.
일반인들에게도 한민족이다, 이산가족의 인도적 차원이다와 같은 감성적인 이유만이 아닌 경제적이익, 국제 속 한반도 명예와 같은 실리적 측면에서도 홍보해주세요.
두서없이 글 썼습니다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개인의 생각이 아닌 전화를 통해 들은 많은 이산가족 분들의 의견을 듣고 대표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부디 이산가족 영상편지 문제 시정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