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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산가족 이야기

이산의 아픔-불행한 가정사

등록일2015-09-07 10:08
글쓴이 : 전도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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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나이 69 글쓴이 출신지 강원특별자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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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이 : 전도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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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이 나이 66 찾는이 출신지역 강원특별자치도
나는 납북(拉北) 이산가족이다. 바로 아랫 동생이 지난 1968년 동해 어로선(漁撈線)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로 납북된 후, 우리가정은 뜻하지 않게 남북 분단의 현실이 파고 들어 이산가족으로 그리움과 피맺힌 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은 북의 동생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시다 한을 풀지 못하시고 별세하셨으며, 본인의 뜻에 의하지 아니하고 납북된 동생으로 인하여 가족들은 지난 6~70년대 연좌제(連坐制)로 갖은 불이익을 겪기도 한 불행한 가정사를 안고 있다. 이렇게 잊혀진 세월이 벌써 반 백년이 되어 가고 있다.

일반인과 다른 이산가족의 입장에서 시시각각 전해지는 북한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산가족과 탈북자들의 애절한 사연에 주름진 얼굴로 눈물을 찍어내며, 북녁의 동생을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가날픈 희망을 안고 긴 세월의 회한을 풀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던 차에 지난 2013년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게 되었으나, 나흘을 앞두고 북측이 일방적으로 연기하다 우여곡절 끝에 상봉행사가 1회성으로 끝났는데, 이때 적십자사가 북측에 요청한 250명의 생사확인 의뢰자 명단에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포함되는 행운을 얻었으나, 북측이 지금까지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생사확인 불가’라는 통보를 받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심정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인 문제를 북측은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하는지 심한 분노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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