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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편지

강창선님의 영상편지

등록일2024-04-23 09:54:09

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강창선 님이 북측에 사는 이산가족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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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강창선 님이
북측에 사는 외사촌 형 김동완 님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서로 연락이라도 주고받으면서 같이 식사라도 하고 대화하면서 남북이 평화롭게 잘 사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강창선입니다
1959년 3월 13일생이고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258번지입니다
형제는 1남 5녀 중에 제가 외아들입니다
어렸을 때는 위로 누나들만 다섯이 있어서 아들을 낳으려고 제 이름을 씨 받는다고 씨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의 성함은 강갑경, 어머니의 성함은 김봉래입니다
어머니가 올해 살아계시면 1923년생이시니까 100세시고, 11년 전에 89세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1915년생이시니까 살아계시면 109살인데, 91세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 다 장수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부모님 모두 아주 온화하셨습니다
다른 건 모르고 저는 외아들이다 보니까 어머니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만 바라보시다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키가 좀 크셨습니다
저희 친가 쪽으로는 키가 작아서 아버지도 작으셨는데 외가 식구들은 키가 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어머니는 키가 커서 키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성함이 강훈희인데 할아버지 얼굴은 사실 제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두 분 다 돌아가셨으니까요
바로 이 근처에 있습니다
목천 운전리에 있는 독립 기념관 근처에 두 분 모시고 있습니다
저희 형제는 큰누나가 강봉하이고, 둘째 누나가 강봉자, 셋째가 강봉연, 넷째가 강인순, 다섯째가 강봉수, 그리고 제가 강창선입니다
1남 5녀고, 다 생존해 있습니다
형제들 우애 관계는 보통입니다
다 출가해서 멀리 외지에서 살다 보니까 자주는 못 만납니다


외사촌 형의 성함이 김동완입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김동원입니다
나이는 대략 어머니가 100세니까 지금 95세나 90살 정도 됐을 겁니다
찾는 사람이 어머니가 4형제인데 어머니의 오빠들이 두 분 계셨고 딸이 두 분 계셨습니다
외삼촌이 두 분 계시는데 큰외삼촌이 북한에 계십니다
어머니가 막내이기 때문에 외삼촌 아들이 어머니하고 한 5살인가 6살 차이가 난다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에 아주 똑똑하고 외삼촌하고 어머니하고 나이 차이가 크게 나니까 어머니를 귀여워 하셨다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사촌 형이 어렸을 때 애가 아주 영특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께 많이 들었습니다
큰 외삼촌이 성함이 김영구였고 외삼촌이 아주 훌륭하셨고 일제 강점기 시대 때 만주에 가 있으셨다가 지금은 북한에 정착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생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늘 하셨는데 못 만나고 돌아가셔서 참 자식으로서 안타까운 면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고향은 이쪽의 천안 풍세입니다
어머니는 비빔밥 같은 거 좋아하고 소식하셔서 음식을 많이 드시지는 않았습니다
저한테는 둘도 없는 그런 훌륭하신 분이었습니다


만주에 가셨다가 북한에 정착하고 분단이 되는 관계로 영영 못 만나게 됐습니다
6.25 전쟁 때는 여기가 피난처였다고 해서 피난을 딱히 가지 않고 이곳에 계셨다고 합니다
6.25 전쟁 중에도 다른 데로 피난을 가지 않고 고향에 계셨습니다
전쟁 중에 부모님께서 피난을 가지는 않았기 때문에 피난 중에 고생한 이야기는 들은 것이 없고 그 당시에 치열했던 부역이라고 하죠
부역했던 사람 처형당하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항상 외삼촌 이야기를 많이 했죠
지금 살아있으면 뭐하고 있을까, 그런 식으로 어머니께서 외삼촌에 대해서 항상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또 어린 시절에 헤어진 조카도 항상 그리워하시다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풍세 광덕사라는 절이 유명하죠
그리고 풍세 장날, 어머니가 어렸을 때 장날에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어머니는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보통 집안에서 여유롭게 사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고 외졌으니까 기차역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풍세 사시다가 병천으로 이사 가셨는데 지금 거리로 따지면 차로 20분, 30분이면 오는 거리지만 그 당시에는 참 먼 거리였다고 얘기를 하시면서 고향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개울에서 물장구치고, 개구리랑 물고기 잡고 구워 먹고, 물고기 잡고, 수영하면서 물 마시고, 친구들하고 검정 고무신 신고 학교 가다가 놀던 그런 추억들이 많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둘째 외삼촌이 여기 성안에 사셨습니다
성안에 사셨는데 저희는 병천에 살다가 어렸을 때 처음 외갓집에 가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도 보고 외삼촌이 세발자전거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제가 아직 학교도 안 다닐 정도로 어렸을 때 외삼촌께서 술을 드셔서 취해서 기어 왔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계속 농사지으면서 사셨습니다
고향에서 우리 작은 집이 방앗간을 하셨고 큰아버지가 일본말을 잘하셔서 면사무소에서 일하셔서 어렵지 않게 사셨습니다


저는 군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군 생활을 오래 해서 간부로 제대한 다음 예비군 동대장 생활을 한 20년 넘게 하고 그래서 한 40년간 군 생활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가정주부로 있습니다
1남 2녀를 두었습니다
딸 둘하고 아들 하나 있는데 셋 다 출가했습니다
지금 가족은 큰딸과 손녀와 함께 사는데 손녀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때문에 제가 딸네 집에 있습니다
우리 가족들 행복하고 좋습니다


외사촌 형이 지금 한 90살 되실 것 같은데 살아 계신지 소식도 궁금하고 어머니께 여러 번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시간 날 때마다 외삼촌과 외사촌 형 생각하시고 그랬는데 지금 잘 건강하게 계신지 궁금하고 또 그 자손들도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합니다
남북이 빨리 통일이 돼서 서로 연락이라도 주고받으면서 같이 식사라도 하고 대화하면서 남북이 평화롭게 잘 사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늘 큰 외삼촌인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또 외사촌에 대해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외사촌이 그렇게 똑똑하고 참 멋있다고 하면서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외사촌이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또 자식들 어떻게 잘 됐는지 어머니는 생전에 꿈을 못 이뤘지만 저라도 연락이 되면 어머니께 귀가 닳도록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