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강일안 님이 북측에 사는 이산가족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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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강일안 님이
북측에 사는 언니 강경봉 님과 조카들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언니 아기가 3살 2살 연년생 남자애였어요
결혼하고 얼마 안 됐어요
거기에는 시어머니하고 시동생 둘이 있었어요
시어머니가 아기들하고 못 간다고 붙잡아서
시동생들하고 같이 고향에 남고
제 이름은 강일안이고 나이는 87살입니다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인데 동은 잘 몰라요
제 아버지 성함은 강치호이고 어머니 성함은 우덕순입니다
개성에는 강경봉이 있고 조카가 둘이 있어요
남한에는 오빠와 여동생, 언니랑 7남매가 내려왔어요
오빠는 강영진이고 언니는 강경봉이고 둘째 언니 이름은 잊어버렸어요
내가 강일안이고 밑에 동생이 강원우, 강윤희, 강윤복입니다
찾는 사람은 강경 대국굴이라는 곳에 사는 언니와 두 조카입니다
형부는 내려와서 모르고 언니하고 조카 둘만 개성에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개성시에서 조금 떨어진 대국굴이라는 데에서 살고 있었어요
거기에는 언니가 시어머니하고 시동생 둘을 데리고 있었고
언니가 연년생으로 조카 둘을 낳아서 2살, 3살짜리가 있었어요
걔네들 이름은 기억을 못 해요
언니 이름은 강경봉이에요
나이는 기억이 안 나네요
90살이 훨씬 넘었어요
지금 생각하기로는 개성에 시청이 있었고 시청 옆에 소방서가 있었어요
소방서에서 조금 떨어져 내려오면은 용도산이라는 데에 개성여고가 있었어요
그 밑에 쭉 내려오면 집이 있었는데 그 동네에서 살았어요
저는 언니들하고 개성 명덕소학교에 다녔고
언니는 새로 지은 개성여고에 조금 다니다가 피란을 내려왔어요
9·28 수복 이후에 조금 같이 살다가 1·4후퇴 때 헤어졌어요
형부가 우리하고 같이 내려왔는데 가방에 인삼을 잔뜩 둘러메고 가지고 내려와서
조강 나루터에서 하루 저녁을 문간방에서 자고
그 이튿날 유격대가 새벽에 와서 배를 태워 주고 인삼을 조금 나누어주고
조강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어딘가 와서 내렸는데
그날 오후에 걸어서 온 데가 영등포였어요
영등포에서 형부랑 같이 아마 1, 2개월 영등포에 있다가 강경으로 내려왔고
형부는 영등포에서 미군 부대에 다닌다고 그랬어요
언니 애기가 3살, 2살 연년생 남자애였어요
결혼하고 얼마 안 됐어요
거기에는 시어머니하고 시동생 둘이 있었어요
시어머니가 애기들하고 못 간다고 붙잡아서 시동생들하고 같이 고향 대국굴에
남아 있었고 형부만 같이 내려왔어요
대한민국에서는 영등포에서 한 두어 달 있다가 강경으로 내려와서
친정아버지가 거기서 지금은 직물공장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직접공장이라고 조그만 공장을 했는데 그걸 기반으로 조금 커졌어요
강경에 친정아버지의 형수님이 조카하고 살고 있었어요
그 인연으로 강경으로 내려와서 제가 거기에서 강경여고까지 나왔어요
장성한 후에는 다들 뿔뿔이 헤어져서 거의 다 서울에서 살고 있고
대전에 나만 떨어진 것 같아요
제게는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는데
지난번에 전화 주셨던 대흥동에 살고 있었어요
한 4, 50년 넘게 살았는데 거기가 개발돼서 작년에 이주하라는 바람에
다 정리하고 이 조그만 데 아파트로 이사 왔어요
조카들아,
살아있다면 이모들이 남한에 있으니까 언젠가 다시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지금쯤 거의 70살이 다 됐을 나이인데 만날 수 있을지
이모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너희들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른 시일 안에 통일이 된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만나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구나
외가 쪽으로는 남한에서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들 지내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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