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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편지

권갑상님의 영상편지

등록일2023-03-08 16:21:02

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권갑상 님이 북측에 사는 이산가족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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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이 영상은 남측에 사는 권갑상 님이 북측에 사는 누나 권춘상 권채옥 동생 권순옥 님을 찾는 영상편지입니다.
권갑상:내 이름은 권갑상입니다. 나이는 36년생이고 87세입니다. 고향은 강원도 원산시 평화리입니다.
나레이션:보고 싶은 얼굴
권갑상:찾는 사람은 다 돌아가셨겠지마는 제일 큰누나는 권춘상 그 다음 누나는 권채옥 내 밑으로 동생 하나 있는데 권순옥입니다. 6.25 당시에 우리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는데 그때 사내아이를 낳았어요. 그때는 이름을 짓지 못해서 이름은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 성함은 이군환이고 아버지 성함은 권택하입니다.
나레이션:추억
권갑상:우리 큰누님은 원산유지고를 나왔고 우리 둘째 누나는 원산여고를 나왔는데 어느 학교인지는 기억이 안 나요. 추억은 지금 그다지 생각 안 나요. 그때 내 나이가 15세이니 지금 몇 년 지났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동생은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 싸운 기억도 안 나고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원산역 앞에 살았는데 이층집에서 살았어요. 아래층에는 문구점을 세 주고 그리고 조그마한 가게를 우리 어머니가 했어요. 내가 중학교 때인데 원산역 앞에서 공을 차고 놀았던 생각이 나요.
우리 역 앞에는 그때 당시 큰 휴게소가 있었어요. 3층 집인데 그때 원산에서 제일 컸어요. 우리 밑에 집에는 철도 하숙소가 있었는데 그거 밖에는 기억 안 나요. 학교는 저는 제1중2학년 때 피난 나왔습니다. 동생은 어느 학교 다녔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나레이션:헤어짐
권갑상:6.25 당시에 우리가 양지리에 있었는데 그때는 일주일 있다 들어간다고 해서 어른들만 피난 나오려고 계획했는데 그때 내가 따라나섰어요. 저는 아버지하고 나왔기 때문에 엄마 누나 동생은 그때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냥 피난 나왔어요. 그런데 아버님이 엄마 보고 가자고 했는데 제가 하도 다리가 아파서 일주일 있다가 들어올 텐데 뭘 보겠느냐고 하고 고향을 나온 게 이때까지 있었습니다. 그거밖에 기억 안 나요.
우리 누나는 그때 문천군 천내리에 있었는데 그땐 여자들은 나올 생각도 못했고 그래서 보지도 못하고 나왔어요. 남동생은 그때 우리 어머니가 남동생을 낳은 지가 며칠 안 되어서 같이 피난을 못 나왔죠. 나이는 6.25중이니까 알겠지만 이름은 전혀 몰라요.
나레이션:나의 삶 나의 가족
권갑상:우리가 아버지하고 거제도까지 피난 갔는데 나는 부산에 나와서 월급도 못 받고 밥만 먹고 일했습니다. 그래서 이북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묵호에 와서 오징어를 건조하다가 또 속초가 고향에 가깝다고 해서 속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속초에서 다시 강원도 중앙면 송암리 거기에 들어가서 살았는데 그때는 아버지가 목재소를 했습니다. 저는 그때 나이 많아서 중학교에 들어갔죠. 4년 쉬다가 중학교에 들어갔으니까 학교는 고등학교 겨우 졸업 맞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은 잘 몰라요.
그때 15살에 어머니 처음 떠나봤는데 밤낮 울었죠. 울다가 남의 집 생활이 피곤해서 생각도 안 나고 근래에 와서는 늙으니까 엄마 생각이 나네요. 어머님 다 돌아가셨지요. 저 가족은 우리 집사람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제가 2녀 2남을 뒀습니다. 제일 맏딸이 내년에 환갑이에요. 그 다음 둘째 딸이 두 살 아래고 큰 아들이 지금 57세예요. 우리 막내아들이 지금 55세입니다. 4남매 뒀어요.
부모님이 이불 뒤집어 쓰시고 그것만 하루종일 봤습니다. 배냇저고리를 갖고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같이 묻었습니다. 제사 때는 지방 쓸 때 아버지가 붓글씨로 할머니나 이렇게 그림을 그려 보기도 하고 아픔이 좀 많았습니다.
나레이션:영상편지
권갑상:저는 큰누나를 참 좋아했는데 내가 나이가 있으니까 누나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겠지만 막내 동생은 남자애는 아마 살았을지 모르겠어요. 그때 가족이 같이 피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이렇게 떨어져 살아서 거기 이북에 있는 사람은 고생 더 했겠죠. 이남으로 피난 나온 사람들 때문에 아마 차별 대우를 받았을 겁니다. 어머니 큰누나 둘째 누나 우리 동생 아마 고생 많았을 거예요. 그게 제일 안타깝습니다.
우리 막내 동생 아기는 이름도 모르고 내 바로 밑에 여동생은 나보다 두 살 아래니까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몸이 아파서 그렇게 지내니까 네가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 때를 기다려볼 수 밖에 그 동안 잘 지내 고맙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우리 부모님들이 찾던 형님과 누님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서로 연락이 됐으면 아까 말한 것처럼 영상편지를 서로 보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살아 계신다면 참 좋겠습니다.
나레이션:영상편지 끝 대한적십자사 2022년도 이산가족영상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