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편지 등의 기증 자료를 통해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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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던 동생아, 살아만 있어다오!내 고향, 내 가족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2018.11.06 허남순님의 가족 이야기
지금도 고향으로 가던 그 길이 눈에 선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북녘의 고향 땅은 그때의 기억 속에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을 나뉘던 38선이라는 경계선이 생긴 이후,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어 힘들게 남한에 도착했지만, 결국 부모님과 동생들을 북에 남겨 둔 채, 70년을 헤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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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다.가족을 만나 고향땅을 밟는 것이 평생소원이자 마지막 소원입니다.2018.11.22 박옥순님의 가족 이야기
67년, 긴 세월이 지나서야 상봉을 하게 된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감격과 기쁨 그리고 슬픔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고, 보는 이들의 마음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며 눈을 떼지 못했던 또 한명의 이산가족이 있습니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아직도 만나지 못한 박옥순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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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운 내 고향이여!살아생전에 다시 볼 수 없다면, 잘 살고 있다는 서신만이라도 받았으면..2018.11.01 박재풍 김상운님의 가족 이야기
박재풍님은 6.25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를 지니며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폭격에 돌아가셨고, 큰 형님의 생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동생 박재영님은 의용군으로 소집되어 북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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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만나고 나니 더욱 그립고,만나고 나니 더욱 눈물이 납니다.2018.11.01 박정서, 이소근님의 가족 이야기
박정서님과 이소근님은 이산가족이라는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온 노부부입니다. 언젠가는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평생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간절한 소망이 전해진 건, 2015년, 20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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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2017.11.22 오형재님의 가족 이야기
2000년 6.15 공동선언이 합의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화제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북에서 온 오영재 계관시인과 그의 동생 오형재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형은 북한 최고의 영예인 김일성상 계관시인으로, 동생은 남한의 대학교수가 되어 첫 상봉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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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운 내 고향이여!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운 내 고향이여!2017.11.22 이경주님의 가족 이야기
빛바랜 사진 속에는 서른여덟 살의 어머니 그리고 어린 여동생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사진을 바라보며 그때를 떠올려보지만, 모든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운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시간을 멈춘 빛바랜 사진 한 장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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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다.형님!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다.2017.11.22 정장덕님의 가족 이야기
여기, 조금은 특별한 이산가족이 있습니다. 1968년 4월 17일, 동해상에서 조업중이었던 형은 납북된 뒤 돌아오지 않았고, 그런 형과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동생, 정장덕씨입니다. 동생의 기억 속에 형은 누군가가 버린 자전거를 새 것처럼 고쳐서 타고 다닐 정도로 손재주가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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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던 동생아, 살아만 있어다오!꽃 같던 동생아, 살아만 있어다오!2017.11.22 정현모님의 가족 이야기
정현모 할머니는 지금도 남동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47년의 흘렀건만, 야속하게도 남동생에 대한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외모 탓에 집 안의 자랑거리였던 남동생이 제대를 열 흘 남겨놓고 휴가를 나왔고, 다시 군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사를 나눈 그 시간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